독서의 변천: 해독과 암송을 넘어 이해의 영역으로
문자가 생성된 이래 문식성 교육이 보편화되기까지는 수천 년이 걸렸다. 이 역사 속에서 독서의 개념도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수메르인의 쐐기문자나 이집트의 상형문자 같은 초기의 문자는 주로 종교나 국가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집트인들은 문자를 신의 선물이라고 믿었고, 중국에서도 갑골문자와 관련하여 유사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는 소수의 사제나 관료가 전대의 기록을 정확하게 해독하고 새로운 기록을 남기기 위해 문자를 배웠다. 당시의 문식성은 문자를 정확하게 해독하고 또 기록하는 능력을 의미했다. 그러나 고대 사회의 일반 구성원들은 절대다수가 문식성을 갖추지 못한 채 구술과 기억에 의존했다.
중세 시대에도 대중들의 삶은 여전히 구술문화 속에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필사되거나 인쇄된 책의 양은 조금씩 늘어났지만 독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시의 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성경이나 유교 경전과 같은 종교 서적이었다. 독서의 목적도 책에 기록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암송하는 데 있었다. 대부분 문맹이었던 당시 사람들은 성직자의 낭독을 들으며 그 내용을 기억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에게 독서는 일종의 듣기를 통한 기억 행위였다. 책의 내용은 신이나 성현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생각을 반영하거나 변형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독자의 역할은 성직자의 낭독을 통해 전달되는 절대자의 말씀을 온전히 기억하고 수용하는 것이었다. 종교가 곧 사회의 질서였던 이 시대의 독서는 다분히 종교적이고 사회적이며 공적인 행위였고, 작문은 절대자의 말씀을 베껴 쓰는 필사에 한정되었다.
독서 행위는 문자 언어와 함께 탄생하였지만, 대중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본격적인 독서문화는 16~19세기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책이 민간에 보급되고 문식성 교육을 받은 이들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일반 독자층이 탄생한 특별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성직자의 낭독에 의존하는 대신 직접 책을 읽고 그 의미를 탐구하였다. 독서는 비로소 독자의 개인적인 공간 안에서 실행되는 사적인 행위가 되었다. 이와 함께 음독 대신 묵독이 보편화되었는데, 묵독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인지적인 에너지를 의미 파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전대의 독자들과는 다른 차원의 정신활동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 시대의 독자들은 책의 의미를 이해하고, 필자의 메시지에 자신의 의견을 더하거나 반박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들은 인문학이나 과학 분야의 신간, 신문 기사, 정치 가십, 통속 소설 등 다양한 읽을거리를 읽고 살롱이나 커피하우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종 인쇄물을 매개로 하여 세상사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여론도 형성되었다. 이 시대의 독자들은 글의 의미에 대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공유했다는 점에서 발전된 독서의 개념을 보여준다.
20세기 이래 독서의 개념은 더욱 복잡해지고 확장되고 있다. 독서는 기본적으로 문자를 해독하고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정신 작용을 의미한다. 필자는 문자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글로 구성하고, 독자는 그 글을 읽으며 필자가 구성한 의미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이때 독선은 필자와 독자가 문자 언어를 매개로 하여 소통하는 행위이며, 문자 언어는 필자와 독자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상징적 표상 체계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독서 행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도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일례로 영국의 심리학자인 프레데릭 바틀렛(Frederic Bartlett)은 '유령들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글을 활용하여 실험을 하였다. 인디언 전설을 읽고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그 내용을 회상하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회상한 내용은 원문과는 매우 달랐다. 인디언 전설에 친숙하지 않았던 학생들은 원문의 내용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한 후 재구성하여 회상했던 것이다. 독서 후 시간이 지날수록 내용의 변형도 심해졌다. 이 실험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인간의 기억이 재구성되며, 특히 독자가 글의 정보를 자기 나름대로 변형해서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독자의 경험, 지식, 문화, 신념, 예측, 선호 등 다양한 용인이 독서의 과정은 물론 독서의 결과인 기억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후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이해, 사고, 느낌, 학습, 기억 등 다양한 정신 작용을 본격적으로 탐구해 왔다. 독서는 이러한 인간 정신 작용의 총화이기 때문에 독서 행위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이래 현재까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1. 과거에는 어떤 개념의 의미가 현재와는 매우 달랐을 것이라는 걸 상상해보는 일은 즐겁다.
지금 우리에게 독서는 '이해'의 영역이다. 과거에는 정확하게 문자를 해독하고 기록하는 일이 '독서'의 영역이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활용하는 문자는 과거에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고, 선조의 말씀들, 신의 말씀을 기록하는 신성한 도구였던 것이다.
2. 낭독에서 묵독으로의 변화
낭독에서 묵독으로 독서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사람들은 더 많은 인지적 역량을 의미 파악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독서라는 것이 절대적 진리를 목소리를 통해 복제하여 글을 읽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의미하다가, 스스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영역으로 옮겨간 것을 의미한다.
다만 신기한 것은, 우리는 어떤 글을 읽을 때 이해가 안되면 소리 내 읽어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같은 행위도 목적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3. '이해'라는 것
수능에서 학생들에게 독서는 '이해'라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이해하려면 능동적으로 글을 읽어야 한다. 글자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독자가 종이 위에 있는 글자들을 만나러 가야 하는 것이 진정한 독서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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