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행위의 주체, 독자의 발견, 독서교육론 - 사회평론

독서의 구성 요인과 독자

  독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복잡한 정신 작용이다. 독서의 요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요인으로는 

1) 독서의 목적이나 과제

2) 독서의 자료가 되는 텍스트

3) 독서의 주체인 독자

4) 독서 행위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나 맥락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요인은 텍스트이다. 독서의 역사 속에서 텍스트는 독서의 출발점이자 목적지였다. 전통적으로 독서는 텍스트에 내재된 의미를 독자가 이해하고 수용하는 행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필자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매개물로서 독서의 핵심이었다. 

 

- 텍스트의 절대성

텍스트는 초기 독서 이론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요인이었다. 텍스트에는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의미가 있고, 독자는 이를 왜곡 없이 정확하게 해독하고 독해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초기의 독서 연구자들은 독서의 여러 요인 중에서도 텍스트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텍스트의 내용, 주제, 장르, 구조, 난도, 스키마의 영향과 독해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독서 연구자들의 텍스트에 대한 관심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테크놀로지, 복합양식성, 텍스트 복잡도, 다문서 독해를 포함한 새로운 분야로 텍스트에 대한 연구 영역이 점차 확장되고 연구 방법도 다원화되는 추세이다. 

 

텍스트에서 독자로: 독자의 존재와 역할의 발견

  초기의 독서 연구 중에는 텍스트에 따라 인간의 기억이나 독해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검증한 경우가 많았다. 이때 연구자들이 텍스트에 주목한 이유는 텍스트의 여러 가지 특성(예: 구조, 난도, 주제 등)에 따라 독서의 과정이나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텍스트에 무게 중심을 두고 독서를 탐구하는 관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이나 접근 방식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내려온 텍스트(글) 중심 독서관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텍스트와 독해의 관계를 탐구한 일련의 연구들은 오히려 텍스트가 인간의 독서 행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독해에는 텍스트의 영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었고, 그 핵심은 독자였다. 

 

  독자는 독서 행위의 주체이다. 독자는 독서의 목적을 인식하고, 독서의 대상인 텍스트를 선정하고, 독서의 방법을 결정하고, 실제로 텍스트를 읽어 나가면서 다양한 기능과 전략을 사용하고,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한다. 또한 독서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인지하고, 적절한 방법을 찾아 해결하고,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다른 독자와 공유하는 활동도 수행한다. 독자가 이 중 어느 한 과정이라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면 독서는 실패한다. 독서의 전 과정이 사실상 독자의 통제 하에 있으니 독서에서 독자의 역할은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서의 개념을 규정함에 있어서 독자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과거 오랜 기간 동안 독서에 대한 인식은 독서 자료인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독자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연구자나 일반인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텍스트의 견고한 위상이 붕괴된다. 그 이면에는 독자의 비율과 문식 수준의 상승, 독서의 과정과 요인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결과의 축적, 독자의 역할을 인식하고 강조하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성장 등이 자극원으로 존재했다. 아카데미 안팎의 이러한 변화 속에서 텍스트뿐만 아니라 독자의 영향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대중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누구이며, 독자의 독서 행위를 촉발시키는 동기는 무엇이고, 개별 독자의 특성에 따라 독서 행위는 어떻게 달라지고, 독서 후 독자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가?'와 같은 문제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독자 연구도 활성화된다. 독서의 개념도 '텍스트와 독자가 상호 작용하여 의미를 구성하는 정신 작용'으로 설정된다. 엄밀하게 말해 이러한 독서의 개념은 텍스트에 비해 독자의 우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이 개념에서 텍스트와 독자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상호 작용하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독서의 개념은 독서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수 천 년 동안 텍스트에 가려졌던 독자의 위상을 텍스트의 수준까지 끌어올려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20세기는 독서에서 독자의 존재와 역할이 새롭게 정립된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 독자의 역할

지금 우리에게 독서에서 독자의 역할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같은 글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생각과 느낌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문학 작품도 그렇고, 정보를 전달하거나 설득하는 글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문학을 이해하는 네 가지 관점을 교육하면서 '독자 중심주의', '효용론적 관점'을 가르친다. 이는 독자가 인식의 주체이며 텍스트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한다. 

이러한 관점은 토론 교육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심청전'을 읽고, '심청'이의 행동이 진정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었을까'와 같은 쟁점으로 토의, 토론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이는 같은 내용의 문학 작품을 읽고도 사람마다 인물의 행동에 대한 생각이 다르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종교 경전은 독자의 자의적 해석이 금기시 되어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원주의로 이행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텍스트에서 출발한 독서 연구의 쟁점이 독자로 옮겨갔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